캐리어가 고장난 관광객을 위한 안내사의 노력.


 2019년 6월 4일 / 명동 움직이는 안내소 / 홍승채, 최은수 안내사



오후 7시 25분경 하루의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를 하는 도중 일본인 관광객 분이 급히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무슨 일인지 여쭈어 보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캐리어가 열쇠와 비밀번호로 이중 잠금장치를 해두었는데 캐리어를 여는 자물쇠의 열쇠를 잃어버려서 캐리어가 열리지 않는 상태라고 하였습니다. 근처에 열쇠방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로는 한계가 있다며 간곡하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특히 오늘 밤 10시까지는 공항에 가야 하는 상황인데 캐리어 내부에 여권을 비롯한 중요한 물품들이 다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묵고 있는 호텔에 캐리어에 넣어 수하물로 보내야 할 액체류나 기념품이 있어서 꼭 공항에 가기 전에 여기에서 캐리어를 수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미 체크아웃은 마친 상황이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남은 짐들은 현재 호텔에서 보관을 하고 있으며 캐리어를 고친 후에 다시 호텔에 가서 남은 짐을 찾아 공항으로 갈 계획이었다고 하였습니다. 명동에는 열쇠 가게가 몇 군데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열쇠 가게가 이 시간이면 문을 닫을 시간이었습니다. 우선 인터넷에 급한 대로 검색을 하여 전화를 해보았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명동 가판대 특성상 전화번호가 등록되어 있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에 무작정 아는 곳을 안내 했다가 만약 문을 닫기라도 했으면, 관광객은 헛걸음을 할 뿐 아니라 안내사들이 이미 퇴근을 하여 더 이상 도움을 드리지 못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습니다. 이미 업무는 끝난 시간이었으나, 간절한 관광객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였고 저희는 명동 내 가까운 곳에 있는 열쇠 가게들을 함께 가드리겠다고 말씀드리고 동행 안내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상처럼 명동에 있는 열쇠 가게가 모두 문을 닫은 상황이었습니다.


 명동 외곽으로 나가서 찾는 방법 밖에는 남은 게 없었습니다. 퇴근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사복으로 환복하고 명동 외곽으로 함께 가드리는 것이 조금 더 편하게 도와드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관광객에게 이 부분에 대해 잠시 기다려 주실 수 있는지 양해를 구했습니다. 관광객 분께서는 오히려 자신 때문에 근무 후에도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미안함을 감추기 못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도움을 드리고 싶으니 부담 갖지 마시라고 말씀을 해드린 후 명동 외곽에 있는 열쇠 가게를 검색하여 우선 전화로 영업여부를 여쭈어보았습니다. 한 곳에서 영업시간은 이미 끝났지만 사정을 들어보신 사장님께서 기다려주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몇 군데 연속해서 전화 연결을 실패한 끝에 얻은 답변이라 더 뿌듯했습니다. 시청 광장 지하 쇼핑센터에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관광객과 함께 그곳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사장님은 캐리어의 상태를 보더니 한 번에 자물쇠를 열어 주셨고, 캐리어가 무사히 열렸습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는 관광객 분은 이제 호텔에 가서 나머지를 정리하고 무사히 공항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며 저에게 몇 번이나 인사를 하였습니다. 한국에서 이렇게 도움을 받게 돼서 정말 고마웠다고 하시며, 평소 한국을 너무 좋아해서 자주 찾는 편이라는 관광객의 말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습니다. 다음에 명동에 왔을 때 꼭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관광객분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어 기뻤고, 조심해서 귀국하시라는 말과 함께 관광객분을 배웅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캐리어 가방이 열리지 않아 출국 시간이 임박해오는데도 명동 한복판에서 어쩔 줄 몰라하시던 관광객 분에게 제가 베푼 작은 성의가 한국을 다시 찾는 발걸음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