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대문의 밤, 안전하게 지켜요.

6월 24일 / 동대문 고정식 안내소 / 김현철 안내사



6월 24일 밤 11시경의 일입니다. 밤 10시가 되면 문을 닫는 대부분의 관광지와는 달리, 동대문은 번쩍이는 네온사인과 함께 또 다른 하루가 시작하는 시간이지요. 도매상인들의 출퇴근과, 쇼핑몰을 찾아오는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로 안내소는 북적거리는데요.



평소처럼 근무를 하던 도중 내국인 남성분이 안내소를 내방하셨습니다. 무슨 일인지 여쭈어보자 바로 앞 굿모닝시티 쇼핑몰 벤치에서 휴대폰을 습득했다며 이 곳으로 가져온 것입니다. 남성분과 함께 휴대폰을 확인해 보았는데 비밀 번호로 잠겨 있었고 영어, 사우디아라비아어로 메시지가 울리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늦은 터라 집에 가야 한다며 휴대폰을 맡아줄 수 있는지 부탁하는 내국인 남성분께 저희가 맡고 있다가 주인이 나타나면 찾아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휴대폰의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라 혹시 연락이 올 때를 대비하여 충전을 시켜두었습니다. 안내 업무를 지속하면서 휴대폰을 수시로 체크하였는데 자정이 지나도록 휴대폰으로는 전화 한 통 오지 않았습니다. 동대문 야간 안내소는 새벽 1시까지 근무하기 때문에 이제 곧 있으면 안내소를 닫을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12시 40분 경 전화 한 통화가 걸려왔습니다. 다행히 잠금 번호가 걸려 있어도 수신이 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중동 분으로 추정되었는데, 연결 상태가 좋지 않고 영어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뒤 다시 전화가 연결되었습니다. 영어로 의사 소통도 잘 되지 않고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 파악이 불가능하시다는 말에 주변에 있는 한국 상인 분에게 전화를 부탁드렸습니다. 상인 분께서 현재 이 사람이 청계6가 근처에 있다고 말씀을 해주셔서, 저는 전화를 다시 바꿔 위치와 오는 법, 운영 시간 등을 알려드렸습니다. 혹시 몰라 안내소 전화번호를 남겨드렸습니다. 관광객은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고 지금 바로 안내소 쪽으로 갈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했습니다.




어느덧 기다리다 보니 새벽 1시가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안내소 업무를 마치고 퇴근 시간이 지나 환복을 한 후 안내소 밖으로 나와 관광객들을 기다렸습니다. 조금 뒤 전화가 다시 한 번 걸려왔습니다. 1시까지인데 늦어서 미안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곧 간다고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양해의 전화였습니다. 밤이 어두워 조심해서 찾아오라는 인사와 함께 10분 정도를 더 기다리니 중동 분으로 추정되는 남자 세 분이 안내소를 향해 다급히 걸어오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니 금세 눈치를 채시고 기뻐하며 저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한국으로 출장을 왔다가 가족에게 줄 선물을 사느라고 휴대폰을 깜빡했다고 하며, 이렇게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너무 기쁘다고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저 역시 마음이 뿌듯해졌습니다. 감사의 뜻으로 쥬스라도 사고싶다는 관광객 분들에게 당연히 해야 한 일을 해드린 것이고 휴대폰을 찾아드릴 수 있어 나 역시 기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관광객은 시간이 늦어서 당연히 퇴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말과 함께 한국의 이런 서비스가 매우 감동적이고 큰 도움을 받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저 역시 기분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하였습니다. 이후 노점시장과 도매 쇼핑몰의 정보와 호텔에 돌아가실 때 타실 수 있는 심야버스 번호와 정류장을 추가로 알려드리자 세 분의 관광객은 매우 기뻐하며 악수를 청하였습니다. 반갑게 악수를 하고 환하게 웃는 얼굴로 길을 떠나는 관광객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밤을 잊은 동대문이라는 말처럼, 오후 10시 이후 동대문 안내소에는 많은 관광객 분들이 내방하십니다. 다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들이 전부 문을 닫은 늦은 시간 곤란한 상황에 처한 관광객 분들이 다급한 마음으로 안내소를 찾아올 때마다 저 역시 최선을 다해 어떻게든 일을 해결해드리려고 노력하는데요. 비로소 환하게 웃는 관광객들의 모습은 무엇보다도 큰 힘이자 원동력이 됩니다. 혹시라도 밤 늦게 동대문에서 안내소 표시를 발견하신다면, 언제든 저희에게 찾아와 주세요. 동대문의 밤을 안전하게 지켜드립니다.